9위 태극기 몰래 휘날리며~
"독립운동을 위한 태극기, 이곳에서 만드세요"
1885년에 설립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입니다.
정동제일교회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비밀기지였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 내 독운동의 비밀장소??
바로 파이프 오르간 뒤쪽 작은 공간인 송풍실.
만세 운동에 필요한 유인물 제작도 이뤄졌던 곳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 역할도 했던 곳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정동제일교회. 일제의 감시때문에 장소 제공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 상황, 정동제일교회가 한국 역사에 숨은 공신이 된 이유가 있을까?
헨리 아펜젤러는 구한말 한국에 헌신한 1세대 선교사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배재 학당도 설립, 근대 교육과 한국의 계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습니다.
헨리 아펜젤러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했던 말은?!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은 우리 외국인의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
" 우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동일하게 한국을 지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계몽을 위한 외국인들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했죠.
배재 학당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활약했는데, 정동제일교회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던 것!!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을 위해 몸 바쳤던 아펜젤러, 1902년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선박 충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던 아펜젤러는 비서였던 조한규와 한국인 여학생을 구하려고 노력했고, 마지막까지 한국인을 살리려다 끝내 목숨을 잃은 아펜젤러.
진정한 선교인다운 희생정신. 한국을 사랑했던 마음은 학교와 교회를 통해 계승, 한국을 사랑해 더 나은 미래를 주려고 했던 헨리 아펜젤러.
그의 따뜻한 마음과 정신은 학교와 교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8위 조선의 역사를 사진으로 남기다.
1910년 3월 25일,
1945년 11월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긴 귀한 사진들입니다. 일제 강점기 역사의 현장. 나라를 지키려 했던 위인들의 희귀사진입니다. 쉽게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역사 사진들. 이 희귀한 사진들을 누가 찍은 걸까?
묻힐 수도 있던 역사 사진이 공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전역에 흩어진 한국 근대현대사 사진들, 쉬충마오는 직접 발 벗고 나서 수집을 했고,
1979년 첫 해외여행 당시 한국을 방문한 쉬충마오.
위충마오는 대만과 비슷한 역사적 아픔과 한국인들의 애국정신에 공감을 했고, 한국의 역사 사진 수집을 위해 장소, 자금을 불문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쉬충마오의 노력 덕분에 찾은 단 한 장의 사진들, 다시 살아난 격변의 역사 속 조선의 모습.
세월을 거슬러 생생하게 되살아난 우리의 광화문, 쉬충마오의 노력과 땀으로 마주한 역사의 현장. 우리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안타까워한 대한 외국인 쉬충마오.
쉬충마오의 뜻이 세상이 널리 알려지길.. " 이 책을 만든 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그가 마음으로 모은 사진들은 또 다른 역사로 전해질 겁니다.
7위 조선 고아들을 품은 000
조선인들이 핍박받던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게 배척당하던 한 남자.
일본인들이 욕하고 비난한 사람의 정체.
바로 일본인 소다 가이치 입니다. 국경과 민족의 벽을 넘은 진실한 사랑의 봉사자.
1961년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 훈장을 수여, 소다 가이치는 우리 역사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을까. 청년 시절 여러 나라를 떠돌던 부랑자 소다는 술을 입에 달고 살며 방황했는데, 대만 길거리에서 만취해 빈사 상태로 사망위기까지 갔는데 소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구원자는
식민지 조선에서 온 조선인입니다.
힘든 처지의 조선인이 도움을 준 사실에 감동한 소다. 조선인의 이름은 모르지만, 소다는 은혜를 갚고자 은인의 나라 조선에 방문합니다.
105인 사건, 3.1운동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자,
당당히 일제에 항의한 소다. 해방 이후 조선인들이 나서서 소다를 보호, 해방 후 일본으로 귀국한 소다는 일본인들에게 사죄를 촉구했고, 같은 일본인들에게 비난받고 목숨까지 위협받은 소다.
여전히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8월 15일이 오히려 자신들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후아무치함까지..
그럼에도 역사적 진실과 사죄를 외친 일본의 양심 소다. 다시 살게 된 자신의 인생을 조선과 고아에게 평생 헌신을 했습니다.
조선인들보다 더 조선을 사랑하고 생각한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 소다 선생은 일본 사람으로 한국인에게 일생을 바쳤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나타냄이라.
출처: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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