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는 어떻게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을까?
화려한 미모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당나라 최대의 스캔들을 만들어낸 여인인 양귀비.
719년 중국의 산서 지역 출생으로 본명 양옥환.
양귀비는 훗날 후궁이 되면서 붙은 칭호입니다.
순탄하지 않았던 그녀의 어린 시절, 열 살도 되기 전 아버지를 여의고,
하급 관리인 숙부 집에서 수양딸로 자랍니다.
변방 출신의 평범한 소녀가 어떻게 당나라 황제의 눈에 띄어 황실 최고 지위에 오를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미모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양귀비의 미모는 어땠을까?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미인의 모습은 어땠을지?
당나라 미인상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은?
당시 왜 이런 모습을 미인으로 여겼을까?
머리에 쓴 가채는 당나라 문화의 화려함, 풍만한 체형은 부와 건강의 상징이었죠.
당시 미인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화장도 화려했는데,
당시 양귀비의 실제 외모를 가장 흡사하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당시 미인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화장도 화려했는데, 위에 그림이 가장 흡사한 그림입니다.
흰 분으로 피부를 밝게 표현, 볽은 복숭아꽃 같은 생기를 연출,
화전은 중국 고대 여성들이 이마나 얼굴에 꽃, 문양 장식을 붙이던 전통 화장법입니다.
화려한 문양을 이마에 붙였던 당나라 화장법입니다.
양귀비는 글과 음악은 물론이고 춤과 악기 실력까지 탁월했습니다.
서역에서 들어온 호선무에 능했는데, 호선무는 팽이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난도 높은 춤입니다.
양귀비의 춤을 보고 매료된 사람들은 "눈송이가 흩날리는 것 같다."
"바람처럼 가볍다며 감탄 일색"
또 다른 매력은 악기 연주임. 하프 계열 악기인 공후 연주도 수준급이었다고 해요.
호선무와 비파는 당시 서역에서 전해진 문화이자 트렌드였습니다. 이를 익힌다는 것은 당시 여성이 가진 최고의 예술적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것.
양귀비는 미모뿐 아니라 춤과 악기 실력이 뛰어난 예인이었던 것.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함.
그 상대는 당 제국의 태평성세를 이끈 제 6대 황제, 현종.
그 결과 재위 초반 약 20년은 당나라의 황금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종이 특별이 이것을 좋아했는데?! 바로 예술과 음악입니다.
현종은 평생 동안 65 수의 음악을 작곡했고, 게다가 악기 연주 능력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거문고, 피리 등을 직접 연주했고 악단을 지휘할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현종은 춤과 악기 재능이 남달랐던 양귀비에게 끌림.
양귀비와 궁녀들과 함께한 봄 나들이, 연못의 연꽃을 본 궁녀들이 감탄하자 현종은 "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고 물음.
그러자 양귀비를 가리키며 현종은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총명을 겸비한 최고의 파트너죠.
두 사람이 막장 로맨스로 불린 이유는 바로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현종은 왕황후를 후계와 권력 다툼의 문제로 폐위했습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로 폐륜이었던 것. 양귀비의 남편이자 현종의 아들이었던 수왕은 막을수가 없었죠.
당시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죠.
현종과 양귀비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을까?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가 사망하고, 국정을 돌보지 못할 만큼 무너졌고, 신하들이 미녀들을 바쳤지만.
그러던 어느 날 미모와 재능을 모두 갖춘 한 여자를 발견!
그게 바로 현종이 선택한 후궁은 며느리 양귀비였던 것.
양귀비를 종교에 귀의시킨 것,!!
가능한 방법이 존재함.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당시 현종은 도교에 심취해있었는데,
도교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음양오행, 신선 사상, 민간 신앙 등이 융합된 종교입니다.
세속의 혼인 관계를 단절하고, 불교의 승려 출가와 비슷한거죠.
당시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양귀비! 권력의 중심에 서다.
양귀비를 곁에 두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린 현종은 양귀비를 후궁 중 최고 지위인 귀비로 책봉합니다.
황실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양귀비. 하지만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했죠.
미녀들의 전쟁터였던 황궁.
후궁만 121명. 황제의 눈 밖에나면 쫓겨날 처지인거임.
살아남기 위해 현종의 총애를 받아야 했던 양귀비의 생존 전략은 미모 관리.
이른 아침 화청궁에서 단장하는 양귀비.
화려하게 꾸민 채 황제의 곁을 지켰던 양귀비.
콜라겐과 비슷한 당나귀 가죽을 끓여 만든 아교를 복용했다고 해요.
살구씨와 사향을 섞은 옥홍고를 발라 백옥 같은 피부를 유지함.
양귀비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목욕법.
약 43도 천연 온천물로 매일 목욕을 즐긴 양귀비. 하루에 무려 10번이나 함.
양귀비가 액취증이 있어서 목욕을 자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함.
양귀비가 액취증이 있어서 목욕을 자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함.
액취증은 겨드랑이 부위의 땀샘 이상으로 특이한 냄새가 발생하는 증상임.
명나라 고서인 염이편 기록을 보면 양귀비의 붉은 땀을 액취증의 원인으로 후대에 추측한 것.
또다른 미모관리법으로 100일이 안 된 아기 소변으로 씻었다고?
송나라 의서 본초도경을 근거로 후대에 양귀비가 소변으로 미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짐.
당시 후궁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미모 관리.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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