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한 병사 이병헌과 북한 중사 송강호가 초코파이를 나눠 먹던 장면이 있는데, 영화 속 이야기 일까?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DMZ 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라고 있어요.
군사분계선 구분이 없던 1967년 당시 판문점,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경비를 서면서
사진처럼 벤치에 앉아서 얘기도 하고 초코파이도 나눠먹고 그랬다고해요.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합니다.
유엔군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가 사망합니다.
이제 더 이상 공동의 구역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DMZ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DMZ가ㅏ 생겼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반도에 DMA 설치 이야기가 나온 건 정전회담이 열리기 전 부터 입니다.
누가 처음 한반도 DMZ를 구상하고 제안했을까?
한반도에 DMZ를 처음 제안한 나라는 바로 영국입니다.
1950년 11월 4일 중국이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합니다.
중국의 참전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한 영국. 한국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영국이 먼저 미국에게 비무장지대 설치 제안을 합니다.
중국의 참전 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전쟁. 미국과 북한 중국 모두 영국의 DMZ 제안을 거부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전쟁은 그로부터 2년 넘게 계속됐는데, 뺏고 뺏기는 전투들의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히는 철원 오성산 전투.
오성산 확보 실패 원인은 땅굴입니다.
중공군 사령부가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진지라면 그 주요 진지는 반드시 갱도화 해라.
지하 갱도는 땅굴이죠. 중공군 북한군들이 한손에는 총, 한손에는 곡갱이를 쥐었습니다.
낮밤없이 전투와 갱도(땅굴) 작업을 병행합니다.
외국인들이 DMZ 판문점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땅굴때문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신비로운 공간으로 여겨지는 DMZ.
외국인들이 꼽는 관광지 서울 DMZ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곤돌라에 몸을 실은 줄리안과 프셰므.
임진강철교를 복원한 통일대교와 전쟁 중 파괴된 자유의 다리.
하늘 위를 날다 어느새 넘어버린 민통선.
철조망을 빼곡히 채운 소망 리본들.
그 속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죠.
제3땅굴은 북한이 남침용으로 만든 땅굴로 1978년 10월 발견되었습니다.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주의사항 준수와 안전장치가 필요하고 땅굴 내부에 들어가기 전 안전모 착용하면 체험 준비 끝.
제3 땅굴은 군사지역으로 촬영이 불가합니다.
생각보다 깊은 땅굴에 정신 못 차리는 줄리안.
도라전망대는 DMZ와 개성공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 전망대입니다.
실제 북한 모습은 촬영 불가입니다.
신기함에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망원경 너머 북한의 모습.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DMZ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
망원경으로 가까이 보는 북한, 금단의 영역을 보는,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은 모두 4개입니다.
줄리안이 다녀온 땅굴이 파주 제3땅굴 1978년.
마지막 제4땅굴의 위치는?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양구입니다. 고지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당시 상황.
피의 능선 전투였죠. 전투의 이름만으로도 사상자 규모가 짐작될 정도였죠.
심장이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는 의미로 단장의 능선이라 불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잊지 말하야 하는 것은 바로 지게부대입니다.
지게를 지고 전투 지역을 누볐던 이들, 하지만 이들은 군인이 아닌 평범한 주인입니다.
고지전이 벌어진 대부분이 산악지대인데 전투에 필요한 군수물자와 보급품들, 도대체 어떻게 운반했던 것일까?
전투 지역 주민들의 지게로 운반을 합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이에요. 군번도 없이 부상자 사망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하고 잊힌 수많은 이들.
출처: 차이나는 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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